자국 반도체 기업부터 지원한 바이든…TSMC·삼성 운명은?

입력 2024-02-20 06:41   수정 2024-02-20 10:00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국 내 반도체 투자 기업에 대한 보조금 발표를 순차적으로 시작한 가운데 반도체 기업의 공장 건설 속도가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미국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규모를 먼저 확정하면서 대만 TSMC 등 미국 외 반도체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다.

이들 기업 사이에선 대규모 투자를 미 정부에 약속했지만 공장 증설 제한, 상세한 회계 자료 제출 등 독소조항 때문에 보조금 지급을 예상 규모만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미 정부 또한 최근 반도체 수요가 반도체 법을 준비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만큼 크지 않다는 점 때문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위한 여러 제약 조건 등을 내세우고 있다.
美 글로벌파운드리스에 2조원 지원
상무부는 19일(현지시간) 미국의 반도체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의 뉴욕주·버몬트주 신규 설비 투자 및 증설을 위해 15억달러를 지원하기 위한 예비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약 2조 40억원 규모다. 미국에서 지난 2022년 반도체 법 발효 이후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 번째 보조금 지원 계획이자, 첫 대규모 지원 사업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지원을 통해 생산된 반도체는 현재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자동차 및 항공 산업의 반도체 공급망에 안정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을 비롯해 170여개에 달하는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위해 460개 이상의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있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보조금(390억달러)과 연구개발(R&D) 지원금(132억달러) 등 5년간 총 527억달러를 지원하는 반도체 법을 제정했다.
미국 기업에 우선 지원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 지원이 자국 기업에 쏠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반도체 법에 따른 보조금 등으로 인텔에 10조원대 금액을 지원하는 방안을 인텔 측과 논의 중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 사안에 정통한 여러 소식통을 인용해 미 정부가 인텔에 지원을 고려 중인 금액이 100억달러가 넘는 규모로, 반도체 법 시행 이후 최대 금액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지원금에는 대출과 직접 보조금이 모두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소식을 전한 이들은 미 정부와 인텔 사이의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현재 미국 오하이오에 2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며, 애리조나 공장을 대규모로 확장하는 공사도 진행 중이다. 또 다른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에는 1억6200만달러의 보조금이 책정됐다.
독소조항 많아…TSMC는 생산 스케쥴 지연
반면 TSMC를 비롯한 미국 외 반도체 기업들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우선 반도체 법의 독소조항이 너무 많다. 반도체 법은 1억5000만달러 이상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초과 이익을 낼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항을 비롯해 중국 공장 증설 제한, 상세한 회계 자료 제출 등의 요건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법에 대한 독소 조항 우려도 일찌감치 제기됐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최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향후 6~8주 이내에 여러 추가 발표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들과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협상 과정에 있다”고 공개했다. 독소조항을 거부하는 미국 외 반도체 기업과 미 정부 간 협상 난항이 짐작되는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TSMC의 미국 내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시점이 계속해서 연기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여름 현지 근로자들의 전문성을 문제로 미국 애리조나 제1 공장의 양산 일정을 2025년으로 미뤘다. 지난달에는 기술 선택과 연방 자금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제2 공장의 생산 시점은 2026년에서 2028년으로 늦췄다. 지난달 18일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컨퍼런스콜에서 “애리조나 공장의 진척은 부분적으로 미국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인센티브의 양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TSMC, 일본 공장 먼저 가동
뉴욕타임스 또한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칩 제조 확대 계획이 장애물에 부딪혔다’는 기사로 이같은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정부가 주요 반도체 기업인 TSMC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미루면서 TSMC가 미국 외 다른 지역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TSMC가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등에서 반도체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라는 점을 짚으면서 보조금 지급 과정이 지연되면 미국의 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8일 자유시보 등 대만언론은 소식통을 인용해 실제 TSMC의 일본 구마모토 1공장이 오는 24일 준공식(공식 행사명은 개막식)을 앞두고 시범 생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업계 관계자는 TSMC의 주요 고객사인 애플이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의 TSMC 1공장에서 카메라 이미지 센서(CIS)의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ISP) 양산을 재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TSMC가 춘제(春節·설) 연휴 이전부터 시범 생산에 들어갔다면서 당초 올해 연말 이전의 양산 계획이 예정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책연구기관은 랜드 코퍼레이션의 기술 분석 수석 고문인 지미 굿리치는 뉴욕타임스에 “미국 정부가 보조금 분배를 늦출수록 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투자에 뛰어들고 동아시아에 더 많은 첨단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요 줄어
미국 정부 내 고민도 적지 않다. 반도체 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긴 했지만 반도체 쇼티지(수급 부족) 사태는 이미 진정된 데다 오히려 수요 둔화를 우려하는 상황이어서다. 반도체 기업들 또한 수요 감소로 인해 재고가 쌓이면서 당장 새로운 생산라인을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 14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실리콘 웨이퍼 출하량은 전년보다 14.3% 감소한 126억200만제곱인치, 매출액은 10.9% 줄어든 123억달러로 집계됐다. 웨이퍼 출하량과 매출액은 이전 3년간 성장세를 보이며 2022년에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재고 조정과 반도체 수요 둔화로 역성장했다. SEMI SMG(실리콘 매뉴팩처러스 그룹) 회장이자 글로벌웨이퍼스 부사장 겸 최고 감사관인 리 청웨이는 “2023년 12인치 폴리시드(polished) 웨이퍼와 에피(epitaxial) 웨이퍼 출하량은 전년 대비 각각 13%와 5% 감소했다”며 “특히 하반기 출하량이 상반기 대비 9% 줄었다”고 말했다.

올해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함께 반도체 법을 자신의 경제 분야에서 주요 성과로 내세워 왔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내달 7일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마지막 국정 연설 이전에 주요 지원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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